“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딤후 2:20) 그릇을 분류한다면 기준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크기에 따라 크고 작은 것의 차이서부터 청결 도에 따라 깨끗하고 더러운 것 그리고 재질에 따라 튼튼한 것과 약한 것, 무겁거나 가벼운 것, 또는 귀하고 천한 것 등으로 분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용도에 따라 사용하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특징에 따라 장점과 단점의 차이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같은 그릇이라도 환경과 용도에 따라 소용되는 곳에 사용해야만 합리적이고 능률적이기에 자연히 보기에도 좋은 것이다. 그릇과 관련한 이야기가 있어 소개하려고 한다. 아주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던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 보물은 금은보다도 훨씬 더 좋고 꼭 필요한 것 인데 누구든지 빈 그릇을 가지고 오면 보물을 채워 준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누가 그 보물을 받고 사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한 사람이 배고픈 끝에 혹시 하는 마음으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염치가 없어서 제일 작은 그릇을 내밀었습니다. 그랬더니 부자는 즐거이 그릇을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첫째 사람의 말을 들은 두 번째 사람은 좀 큰 그릇을 가지고 갔습니다. 너무 커서 미안하지만 한번 가져가보자고 갔더니 조금도 따지지 않고 부자는 또 즐거이 보물을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누구보다도 더 큰 그릇을 가지고 갔지만, 부자는 약속대로 역시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그릇을 가져갔던 사람들은 모두가 신이 나서 자기 보물을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 왜 그릇을 가져간 사람들에게만 나누어주는가? - 왜 공평하게 똑같이 나누어 주지 않는가? 라며 그 부자의 행사가 불공평하다고 항의했습니다. 부자는 사람들에게 - 그릇에 담아주어야 할 것이니 그릇을 가져오라고 한 것뿐입니다. - 가져온 그릇만큼 밖에는 더 채워줄 수 없지 않습니까? 라고 대답했습니다. 부자는 <창조주>이며, 그 보물은 <인생의 보람>이며 그것을 담는 그릇은 <자기발견> 그리고 이런 소문을 믿는 것을 바로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그릇들은 조성재료와 용도에 따라 미리 귀하게 쓸 것은 귀한 것으로 천하게 쓸 것은 천(賤)한 것으로 장인의 의도와 목적 하에 작정되어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그릇의 용도와 종류는 만드는 사람의 의중(意中)에 따라 결정(決定)되는 것이지, 그릇 자체로는 아무런 권한이나 힘이 없다는 말이다. 때론 주위에서 어떤 사람을 일컬어 “배포가 크거나 두둑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다. 듣기에 따라 또는 결과에 따라 배짱과 담력 그리고 추진력을 겸비한 사람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주제파악을 하지 못하는 무모한 사람이라는 부정적 평가로 나타난다. 물론 사람마다 소위 기질이 다르기에 무엇이 좋다 나쁘다를 평가할 수 없으나 나는 그래도 “쫌팽이(속이 크거나 깊지 못하고 시야가 좁거나 짧은 사람)같은 사람” 이라는 평가를 듣는 것보다 낳으리란 생각이 든다. 주님이 사용하신 제자들의 기질을 보면 대체적으로 무모하다 못해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많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그들을 도리어 훈련하시어 재생산 하시니 마침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큰 그릇으로 사용하셨다. 주님께서는 장차 세상을 뒤 집어 놓을 인물들로 그들을 이미 큰 그릇으로 준비하셨다. 다만 지저분하고 다듬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조금 손질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릇이 더러우면 정결하게 닦는 것이야 한다지만 그릇의 크기를 바꾸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비롯 주위에서도 그릇의 크기를 가지고 시비하거나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피곤한 일이다. 다만 달란트 비유에서 교훈하듯이 그릇의 용도대로 장인의 목적 하에 쓰임 받으면 되는 것이다. 즉 모든 그릇이 다 똑같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다양한 종류의 그릇들은 사용하는 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그릇의 상태는 어떠한가? 을 점검할 필요를 느낀다. 과연 품고 있는 꿈과 비전을 이루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준비되어 있는가? 하고 이다. 불 필요한 것을 비우고 필요한 것으로 채워야 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만일 용량에 비해 사이즈가 작다면 더 큰 것을 기대할 수는 있을까? 가 고민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믿기는 꿈과 비전을 갖는 것도 이루는 길도 나의 인위적인 계획 그리고 노력과 수고에 의한 열매가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로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성도들이 이른바 배포나 (똥)배짱 같은 고집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그릇이 우리에게 주신 꿈과 비전을 능히 이루고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의 그릇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한편 요셉의 큰 꿈을 인해 시기하고 어리석은 일을 행했던 형제들을 기억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왠지 부흥회 강사님의 설교중에 한 마디가 귓전을 때린다. "너는 30만원 짜리야!!!!!!!" 나는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곤 자신의 귀를 막고 큰 소리로 당당하게 이렇게 외쳐본다.(물론 속으로) "누구야 30만원 짜리가?" 이어서 하시는 강사 목사님의 말씀 " 주위사람은 다 아는데 자신만 30만원 짜리인걸 모르는게 문제지요" [출처] 너는 30만원 짜리야!!! |작성자 NY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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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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