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혹은 초등학교 시절 숙제검사를 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참 잘했어요’ 스탬프를 받은 추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은 말도 있듯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를 신나게 하는 것이다. 요즘 졸업시즌을 맞아 학생들이 졸업 연주회나 작품 전시회 등을 자주 갖곤 한다. 미 주류 학생들은 물론 전 세계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 인재들이 몰려든 뉴욕 명문대학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실력을 갈고 닦는 학생들의 모습은 학업의 성취도나 결과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눈물겨운 감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동안 말로만 들어왔던 그들의 피나는 학업현장을 찾아 둘러본 결과 따라가기에도 벅찬 모든 학업일정을 무리 없이 잘 마쳤을 뿐 아니라 마지막 그들의 실력을 평가 받는 졸업 작품전에서도 단연 두각을 드러내고 세계적인 전문가들로부터 “참, 잘했어요” 라는 칭찬과 격려의 평가를 이끌어내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때마다 저들을 자극하고 도전을 주며 비전을 갖도록 전공하는 각 분야에서 반드시 두각을 드러내야만 한다고 기도하며 말씀을 전 하였던바 감회가 더욱 컸으리라. 비록 이제부터 시작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들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에 오히려 더욱 구체적으로 힘있게 기도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소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3박자가 보조를 잘 맞춰야 한다. 당사자 본인의 자세와 협력하는 목사와 공동체의 역활 그리고 역사하실 주님이시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불가능한 문제들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갔다. 그때마다 주님께서 문제들을 해결해 주셨던 특징은 그들이 주님을 찾은 동기와 과정을 살피시고 특히 돕는 중보 자는 물론 당사자의 믿음을 확인하셨음을 이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즉 자신 스스로 회복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의지 그리고 결단이 있어야 하며 또한 함께한 자들의 적극적 협력을 바탕으로 주님은 역사하셨음이 일관된 공통점이라 하겠다. 말 그대로 이 곳 세계적인 도시 뉴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욱 본인들의 피나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협력하는 도구로 목사의 역할을 다 해야만 하는데 나는 단지 생존자체의 의미부여보다는 반드시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소망한다. 인생의 목적이 삶을 유지하고 연장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 듯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조성하시고 만드시고 부르신 목적에 따라 쓰임 받아야만 한다고 했을 때 정체성의 기반이 단순히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소위 인간적인 성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분명한 동기와 목적의 기반을 근거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대치 이상으로 역사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참! 잘했어요” 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노래를 잘 불렀다. 그림을 잘 그렸다. 곡을 잘 썼다. 사진을 잘 찍었다. 작품을 잘 만들었다. 등과 같은 기술과 재능적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생이라는 백지 위에 만들어 가야 하는 작품 속에서도 그 의미를 찾아야 하는데 과연 내 인생이라는 작품을 평가하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어떤 반응으로 어떻게 평가를 하실까? 하나님의 걸작품(엡2: 10)으로서 부끄러움 없이 “참! 잘했어요” 라는 평가를 들어야 할 텐데……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사실 조금 불편한 것이 있다. 전에는 교회에서 목사님이나 어르신들이 자녀들을 위해 “꼬리가 되지말고 머리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귀에 거슬렸었다. 왜냐하면 “다 머리가 되면 꼬리는 누가 하느냐”는 그럴싸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지금은 단어와 표현만 달랐지 “머리나 두각이나 뭐가 다른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없었던 것처럼 슬그머니 꼬리를 내릴 일도 아니다. 굳이 정당성을 부여한다면 한국과 달리 여기는 모든 민족이 함께사는 세계적인 도시 뉴욕이라는 특수성과 특히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을 회복시키기위해 세계와 열방을 뜨거운 가슴에 품은 교회이기에 그만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세계적인 수준의 신령한 교인이 되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가당착[自家-撞着] 또는 이율배반[二律背反, antinomy]이라는 스스로의 모순을 무릅쓰고서라도 계속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 제발 우리교인들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해 주세요”라고 “참! 잘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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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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