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 이상하다.
조그마한 공하나만 잘 차고(축구) 치고(골프) 던지고 때려도(야구) 세상이 온통 들썩거린다. 그 중에 공을 잘 치는 선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최근에 교통사고를 낸 것과 관련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불거진 우즈의 불륜설까지 겹치면서 이번 교통사고가 가정 불화와 관련이 있는지를 놓고 '설 설 설 ', 커가는 '우즈 미스터리'하며 호들갑이다. 유명인들의 스캔들은 언제든지 세인들의 관심사가 된다. 불륜을 주제로 하는 그 흔한 삼류소설 같은 지긋지긋한 이야기가 뻔한데도 말이다. 이 사건과 관련된 눈에 띄는 기사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타이거 우즈는 평범한 삶을 원한다. 우즈는 “고교 시절부터 가장 부러운 것이 자유로운 삶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골프 황제는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 없는 운명이다. 모든 눈이 그를 향했다. 그 덕에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하려 했다. 우즈의 사생활[privacy = private life]에 대한 집착은 더욱 커졌다. 그가 소유한 호화 요트의 이름이 ‘프라이버시’다. 그는 스킨스쿠버다이빙과 스노컬링이 취미다. 우즈는 그 이유를 “물고기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홈페이지에 썼다. 연애도 비밀로 했고 2004년 결혼식은 아예 007 작전처럼 극비였다. 보안 유지를 위해 카리브해 섬나라인 바베이도스에서 방 하나에 최고 8000달러인 호화 리조트를 통째로 빌렸다. 우즈는 경기 중에도 프라이버시를 지킨다. 덩치 큰 보디가드들에 둘러싸여 지내고 경기 중 캐디와 상대 선수를 제외하고는 눈도 맞추지 않는다. 사인 등 팬들의 요구도 외면한다.논란에 말려들어 자신의 생활이 공개될까 꺼려서다. 영국 BBC 스포츠는 “우즈는 우승 트로피만큼 사생활을 갈망한다”고 보도했다. 세상은 참 이상하다. 사람들은 남의 사생활에 관심 정도가 아니라 집요하리 만치 집착한다. 이 같은 사회 심리적 현상뿐 아니라 구조상으로도 사생활 보호라는 말은 거의 물 건너 간듯하다. 불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지금도 여기저기 이곳 저곳 구석구석에 설치된 카메라들이 사람들을 감시하듯 미행하고 있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있다” (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는 공포스러운 영화제목은 오히려 시대에 뒤 떨어지는 진부한 느낌마저 든다. 사생활 공개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 사생활을 스스로 공개해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 방에 카메라를 설치해 인터넷으로 세상에 알린다. 그런 사람들의 노출심리를 이용해서 유명해지고 돈 방석에 오른 사례가 바로 "YOUTUBE" 라는 공룡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초 스피드로 변화하는 이상한 세상은 나를 두 번 놀라게 한다. 하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이고 과연 피조물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이 정도라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할 여지가 없이 더욱 확실해 졌다는 전제하에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된 말씀처럼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라든지 “사람의 심장폐부를 살피시는 하나님” 등과 같은 표현은 더욱 설득력을 뒷받침 한다. 따라서 결국 요한 계시록 20장12,13절에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 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라는 말씀대로 인류는 물론 한 개인의 전 생애 사생활을 살피시고 심판하신다는 말씀은 굳이 설득과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분명하고 확실한 말씀이라는 증거가 또한 나를 놀라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은 비단 어제 오늘의 새삼스러운 주제는 아니지만 분명 경각심을 갖고 스스로 자문자답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기서부터 속이고 속으며 인생은 살아가고 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씀을 저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있다, 없다. 많다, 적다. 크다, 작다. 높다, 낮다”의 차이일 뿐이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인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저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부끄러운 수치를 가리기 위해 두려워 숨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요나는 선지자이면서도 전능하신 하나님,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관에 오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의 사생활은 보호받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왜, 얼마나,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 보장받고 있는가? 여러분을 보호하고 보장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 이십니다. 우즈의 어린아이같은 말처럼 "물고기가 자기를 몰라준다거나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자신을 보시고 아시고 계신다는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리라. [출처] 사생활 [privacy = private life] |작성자 NYGC
0 Comments
Leave a Reply. |
담임목사 칼럼In His Plan, In His Place, In His TIme! Archives
August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