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지인들로부터 뉴요커에서 뉴저지도민이 되었다고 친근감있는 축하인사를 받은지 꼭 일년이 되었다. 그동안 뉴저지도민이 되어 살면서 약간의 변화를 꼽으라면 아마도 교통편이 아닐 수 없다. 뉴욕에서 뉴저지로 건너기위해 수 없이 이용했던 죠지워싱턴브릿지(GWB)를 "조다리"라는 토속적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원주민들(?)이 말하는 "조다리"가 무슨 뜻인지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다가 나중에 알게되어 어찌나 좋아라(?) 웃었는지 모른다. 또 다른 하나는 뉴욕에서 뉴저지방향으로 갈때는 다리나 터널에서 톨게이트를 거치지 않아 요금부담이 없으나 반면에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진입할때는 반드시 톨게이트를 거처 요금부담을 해야만 하는데 이지패스(EZ PASS)사용자에 한해 카풀(Car Full - 승객3명 이상)제도가 있어 엄청난 요금인하 혜택을 받게된다는 사실 또한 뉴저지도민이 되어서야 알게 되어 그 동안 모르고 지불한 세금(?)으로 얼마나 배가 아팠는지.... 특히 평일에는 대중교통(버스)을 이용해 맨해튼 교회와 뉴저지 집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 오며 갈때마다 뉴저지 도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더하는 것이 있다. 평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다는 맨해튼[Manhattan] 마천루[skycraper]를 눈 앞에 두고 허드슨 강을 따라 출,퇴근하는 기분은 마치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한편의 영화를 파노라마로 감상하는 황홀함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또 다른 한편의 장면은 이 그림같은 코스를 따라 줄지워 세워진 아파트나 주택들이었는데 어느 날 나는 그 건물들의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결같이 창문이 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급적 크게 그리고 많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기소통을 위한 환기[換氣, ventilation]나 햇빛을 끌어 들이려는 채광 [採光,lighting]을 목적하기 보다는 맨하탄 전경을 시각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넓게 보기위한 조망[眺望,view]을 위한 방편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창문을 통해 집안 어디서든 언제든지 편안하게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이 곳 주민들은 물론 빠르게 지나가는 차창을 통해 자칫 구경감을 놓칠세라 눈동자를 소리없이 굴리며 촌 스럽게 감상하는 나 역시 이것이 무슨 특권이나 되는 듯 스스로 흠뻑취해 지나치곤 한다. 나는 차창을 통해 수 없이 스쳐 지나가는 창문을 보면서 잠시 창문과 관련된 성경을 생각해 보았다. 먼저 노아의 방주에 달린 창문이 떠 오른다. 규모로는 축구장보다 더 크다는 방주에 지붕[roof] 아래 쪽에 창문하나 달랑 달린 것이 전부다.(창 6장16절) 건축법상이나 그 방면에 무지한[無知漢]이라도 앞서 언급한 어떤 목적(환기,채광,조망)에도 부합되지 않는 엉터리 설계요 구조라고 생각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만일 조망을 목적으로 한 창문이었다면 홍수로 심판받는 세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즐기며 볼 수 있을까? 지금의 중국 대지진이나 미얀마의 사이클론(태풍)과 같은 천재지변의 재앙으로 공포에 떠는 지구촌 모습과는 비교도 안되는 말 그데로 지옥이 따로 없으며 도저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상황이었음을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홍수가 그치고 물이 감하면서 아무런 역활도 쓸모도 없이 굳게 닫혀있던 창문이 드디어 열리는 순간이 왔다. 물이 감한여부를 알고자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 놓기 위해서였다. 심판 이 후에 구원받은 백성이 살아갈 새로운 세상을 확인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역시 창문에 관해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성경은 다니엘의 방에 있는 창문이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려있는 창문(단 6장10절)에서 그는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기록하였다. 여기서 두 가지를 향해 반드시 열려야 하는 창문의 역활을 강조하고 싶다. 하나는 하나님을 향해서 활짝 열려야 하는 창문이요. 또 다른 하나는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야 하는 창문이다. 위에 계신 하나님과의 유일한 소통과 교통의 방편으로서의 창문이어야 그 분의 보호와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비록 심판을 자초하는 타락한 세상이지만 영적안목으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던 세상으로 회복을 주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상과 담을 쌓고는(창문을 닫고는) 결단코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문은 "다리[bridge]"가 되어야 한다. 나의 창문은 지금 어디를 향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열려 있는가? 신기한 것은 맨하탄의 빌딩 숲속에 작은 우리교회가 내 눈에는 보인다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나 한 눈에 띄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옆에 있기는 하지만 그 보다 실은 마음의 창문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인 10명을 찾으시듯 이 세상을 향해 천국의 모든 창문들을 활짝 열어 놓으시고 애타게 바라보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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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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