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럽게 여기는 성품은 끈기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조금(?) 급하며 인내가 부족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또한 내가 소중히
여기는 지혜는 이 끈기를 어떻게 잘 가꾸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귀히 사용하신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눈부신 끈기였다.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눈부신 끈기다. 눈부신 끈기는 꾸준함에 있다. 목회의 성공(?)여부를 떠나 나는 오래 꾸준히 인내와 성실로 한 평생 사역하신 분들을 그래서 더욱 존경한다.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에서 주는 교훈(고전버젼)처럼 빨리 달리는 것보다 천천히 꾸준하게 달리는 것이 지혜다. 빨리 달린다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빨리 달리는 사람은 쉽게 지친다. 너무 빨리 달리다가 쓰러진 사람들을 본다. 빠른 성취 후,공허 속에 사는 사람들을 본다. 얼마전 운전중에 급하게 앞으로 과속하며 끼어드는 차에 큰 사고를 일을킬뻔 한적이 있다. 나는 간신히 노련하고 민첩한 속도조절의 방어운전으로 위기를 넘겼으나 곧바로 내 앞에 차를 급기야 들이받고 휘청거리더니 중앙 분리대를 여러번 들이받고 뺑소니를 쳤다. 그러나 앞에 받친 차는 놀라 한쪽에 차를 간신히 세웠으나 분명 많이 다쳤으리란 생각이 드는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이같이 빠른 성취를 위해 많은 사람을 쓰러뜨리다가 결국 자신도 쓰러진 사람들을 본다. 반면에 이런 해석(현대버젼)도 있다. 사실은 토끼가 게을러서라거나 자만해서 잠을 잔 것이 아니라 거북이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돕고 함께 조화를 이뤄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했었던 아량과 배려차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거북이는 그틈(남의 약점)을 이용하여 이기심으로 승리할때 토끼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현대적 해석이다. 진정한 승리는 최후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더욱 값진 승리는 함께하는 승리이다. 승리의 비결은 속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끈기에 있고 또한 남을 위한 배려와 아량을 베푸는 함께하는 승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속도가 우상이 된 시대에 살지만 우리는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아무리 빨라도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연함이다. 어떤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함 속에 지혜가 감추어져 있다. 타이타닉 호의 비극은 돌이킬 수 없는 속도에 있었다. 방향을 전환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에 있었다. 지혜는 멈추어야 할 때 멈출 수 있고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 잠시 멈출 수 있는 유연함에 있다. 자꾸 거론하고 싶지 않으나 황우석교수의 사태로부터도 좋은 본보기가 될 수있을 것이다. 결국 자의든 타의든 공적이든 사적이든 세계속에서 앞서가려는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 조급한 욕심의 산물이 빚어낸 빗나간 과속이라고 할 수밖에… 너무 크고 또한 너무 빠른 것은 위험하다. 크면 공격 받기 쉽고 너무 빠르면 파괴되기 쉽다.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이해될지 모르겠으나 목회자간에도 목회전략상(?) 부피를 늘이고 줄이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도 한다. 필요하다면 자신을 감출 수 있을 정도의 크기, 필요하다면 잠시 멈출 수 있을 정도의 속도가 좋은 것이다. 멈출 수 없이 빨리 달리다보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달려갈 수가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자문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링컨은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보다 빠르지 못하다고 낙심하지 말자. 눈부신 끈기로 꾸준히 정진하자. 또 조금 늦더라도 주위에 잠자는 토끼가 있나 살펴보자. 그리고 깨워서 함께 나아가자. 멀지 않은 날 하나님이 우리 가슴에 심어준 꿈(비젼)을 성취하는 기쁨을 함께 더불어 누리게 될 것이다. 문제는 과연 어떻게 얼마나 속도조절의 유연성과 함께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갈 것인가가 관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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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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