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라는 무대는 평생 노래만 부르고 살았던 전문 프로 가수들에게도 마음을 놓지 않고 계속하여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는 상태의
긴장감을 갖게 만든다. 아니 관중석에 앉아 있는 평가단은 물론 시청자들 조차도 긴장감을 연출하게 만든다. 그 배경에는 순위를 정한 서바이벌식 경쟁구도를 만들어 결과에 따라 “일등은 살고 꼴등은 죽는다”의 말 그대로 생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출연자들의 인터뷰 내용과 탈락자가 선정되는 순간에는 따뜻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베어 나오는 “동료의식”이 발휘되는 듯 하지만 내심은 철저히 이기적인 차가운 승부욕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배경의 인기와 시청률을 의식한 방송계는 유사한 서바이벌식 프로들로 홍수처럼 넘쳐난다. 어찌 보면 세상의 이러한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라거나 특이한 현상이랄 것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약육강식”의 원리와 구도가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와 전혀 다를 바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사에 존재했던 검투사(Gladiator)들의 잔인한 혈투처럼…… 다만 잠재되고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 본성을 부추겨 자극하고 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랄까? 물론 여러 장점도 있다. 경쟁심리라는 자극제가 부담심리에 불을 붙혀 긍정적 마인드로 작용하니 자신을 더욱 철저히 준비시키고 훈련하여 보다 발전적이고 창의적인 결과를 얻게 되더라는 것이다. 아무튼 “나가수”는 대중 음악계에 돌풍 같은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하기도하며 또한 각종 신조어와 “나는 00다”라는 패러디가 유행될 만큼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 사실이다. 그럼 이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들여다 보자. 하나님은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 택하여 믿는 성도들로 하여금 일할 수 있는 특별 무대를 준비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출연진을 직접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자리(직분)와 역할(사명)을 맡기셨다. 그 만큼 연출자이신 하나님의 애정과 관심은 절대적이시다. 특이한 것은 누가 주연(목사?)이고 조연(집사?)이며 엑스트라(성도?)라고 정해 놓으시지 않으셨다. 또 누가 잘하고 못하고의 점수를 매겨 등수를 정해 일의 성과를 가리지도 않는다. 누구든지 맡은 배역에 자신의 최선과 최대 그리고 최고를 통해 정직하게 충실하면 된다. 성경의 달란트 비유에서 그 사실을 확실히 입증하듯 주님의 칭찬과 책망 그리고 상벌의 기준은 성과 위주의 결과가 아니라 일하는 동기와 과정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일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목적의식이 관건이었다. 하나님은 결코 인생처럼 성과에 급급하셔서 메 달리시는 저급하신 분이 아니 시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로마서 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나의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것도 아름다우려니와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을 돌아보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임을 기억하자. 따라서 교회라는 무대는 독창보다는 합창이 개인의 우월성이나 탁월성보다는 단체의 협동심과 합동심이 우선이 되고 발휘 되어야 한다. 혹시 나 혼자 살아남아 천국 가야 한다거나 내가 반드시 1등을 해야한다고 발버둥치는 사람 어디 있나요? 부디 바라기는 탈락자는 없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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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In His Plan, In His Place, In His TIme! Archives
8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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