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반복되는 일과 중에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데리고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이다.
강아지 역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하는 버릇이 있다. 무언가를 찾는 듯 분주하게 킁킁 냄새를 맡다가 한 쪽 다리를 들고 여기 저기 찔끔 찔끔 소변을 본다. 그것도 매일 항상 같은 자리에 정확히 볼일을 본다는 것이다. 애완견을 키워 본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여간 신기한게 아니었다. 습관적으로 만물박사 인터넷 검색 창에 궁금증을 처 넣었더니 나만 빼고 세상이 다 아는 상식과 정보가 줄줄이 넘처 나왔다. 바로 구역, 또는 영역표시란다. 지금처럼 놀이 문화가 그리 발달되지 못했던 어린 유년시절 자연을 벗 삼아 놀던 원시놀이(?) 가운데 땅 따먹기 놀이가 생각이 난다. 다양한 재질의 작은 소품을 손가락으로 튕겨 자기 땅으로 영역표시를 금을 그어가며 확장해 나가는 놀이다. 영역확장을 위해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열을 올리고 놀다가 해 지는 줄도 모르기 일 쑤였다. 확장에 대한 만족감에 기뻐하기도 하고 땅을 잃은 아쉬움에 탄식소리가 흘러나오곤 했다. 그러나 엄마의 “밥 먹어” 하시며 부르시는 말 한 마디에 미련없이 땅을 버리고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간다. 아마도 인류가 흩어지기를 면하자고 높이 바벨탑을 쌓았던 것도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니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인류가 살아가는 전형적이고 변함없는 모습일 것이다. 얼마 전에 소위 땅밟기 기도를 한다고 모 사찰에 들어가 기도하고 또 그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유포되어 불교계는 물론 세인의 거센 항의와 지탄을 받아 사회적 물의가 된 적이 있었다. 기독교계 안에서 조차 찬반 양론이 되어 혼란에 부채질을 더 하였다. 성경을 근거(여호수아1:3)로 제시하며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해 보지만 목적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 할 수 있다는 논리는 불편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한 발상이며 또 결과에 대한 우려(반작용)를 생각해 볼 때 분명 심사숙고하여 지혜롭게 대처하고 처신하여야 할 일이다. “땅 밟기 기도”라는 표현이 좋다 나쁘다, 성경적이다,아니다라는 주장을 떠나 기독교 이미지에 적 잖은 상처를 주어 무례한 기독교라는부정적 사례가 되어서 그런지 별로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소위 “땅 밝기 기도”를 의미적인 면에서는 나도 오래 전부터 해왔기 때문이다. 딱히 뭐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어도 “여리고성 기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 “땅 밟기 기도”라는 말이 나에게는 처음 듣는 계기가 되었고 부정적 이미지를 가져다 준 것도 사실이지만 기도는 계속 진행되도록 더욱 불을 지피는 계기도 되어 그 동안 혼자 하던 기도를 지금은 교우들과 함께 매주 월요일 저녁 9시면 사역지로서의 약속의 땅인 타임스퀘어 현장에서 열방을 가슴에 품고 지역과 문화 그리고 정서에 맞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강아지의 습관적이고 본능적인 행동이라든지 “땅 따먹기”식 놀이와 같이 의미와 가치를 모른 채 기분과 흥분을 만족시키기위한 영역표시의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기도회는 결단코 원하지도 또 그렇게 의미전달이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사역의 목적만큼 동기와 방법 또한 중요하기에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과 칭송을 받을 수 있는 아름답고 복된 선례가 되어 주변에 긍정적 도전을 이끌어 내기를 기대해 본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마태복음11:12)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한 번 되새겨 보야야 할 때 인 것 같다. 지난 번 타임스퀘어 극장 앞에서 기도를 인도하기에 앞서 목사가 콧 기름 바르고 기도하자고 농담을 했다가 집사님께서 십자가를 그어야지요 하셔서 민망한 적이 있었다. 결국 콧 기름이든 십자가이든 영역 표시하자는 의미에는 이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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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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