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좀 지겹기까지한 유행병이 또 터졌다.
다름 아닌 모 유명 스타강사의 자살 소식으로 또 다시 한국사회가 자살 열풍에 휘 말리고 있다. “행복 전도사 아무개, 남편과 동반자살” 행복전도사의 자살이라니 ….. 도무지 앞뒤가 맞지않는 아이러니한 기사제목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기에 충분하다. 시민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충격이라고 표현한다. ‘행복 그거 얼마예요’ ‘행복이 뭐 별건가요?’등 거침없는 그녀의 저서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평소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과 행복을 주제로 도전을 주는 이야기와 글을 통해 “행복전도사”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던 그였기에 더욱 아이러니한 행복 전도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허망함과 허탈감 그리고 씁쓸함을 넘어 배신감마저 든다는 네티즌들의 반응도 적지않게 눈에 띈다. “그러길래 전도사 아무나 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또 다른 그녀의 저서 “초 울트라 긍정”도 그렇고 대부분 그녀가 행복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강조 부분이 소위 “긍정의 힘”이다. 기독서적에서도 베스트 셀러가 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긍정의 힘은 어떤 과정에서든 어느 정도, 일정부분 도움과 유익을 주는 방편은 될 수 있으나 완전한 문제해결의 만능열쇠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의 믿음과 긍정은 분명 차이가 있으므로 결코 혼돈해서는 안 된다. 긍정은 믿음을 위한 보조수단으로서의 역활과 기능이 있을 뿐이며 긍정을 강조하는 것은 비단 교회가 아니더라도 유사 사이비단체나 기관들이 사용하는 단골메뉴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에 한편으로는 현대병을 앓고 있는 인류에게 가장 많이 어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긍정의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시도가 끊임없이 다양하게 모든 분야에 걸쳐 진행되어 왔고 관심과 인기를 끄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그 동안 다른 자살사건과 달리 이번 행복전도사의 자살사건에서 증명하고 교훈하는 바가 무엇인가? 결과적으로 긍정의 힘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도 사람의 노력과 의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시작과 출발이 잘 못되었으니 결말과 목적에 있어 실패 할 수 밖에 없다는 당연지사가 된 것이다. 좀 더 자세히 기사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 보았다. 그래도 행복전도사라는데 그 만한 이유는 무엇일까? ‘떠나는 글’이라는 제목의 유서에서 “2년 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며 많이 지쳤다. 더 이상 입원해서 링거를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 않다”고 적었다. 유서에는 또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이해할 것.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 수는 없고…그래서 동반떠남을 하게 됐다’며 부부가 함께 목숨을 끊은 이유도 적혀 있다. 동정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자살관련 기사와 별 다를 것이 없다. 이유와 사정은 달라도 마지막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자살자들의 입장은 모두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고통”이라는 공통성을 갖고있다. “고통”에 관한 한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욥”이라고 하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행복에서 불행을 천국에서 지옥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고통의 끝을 경험하고 극복했던 믿음의 대가이다. 간단명료한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인류의 고통은 창조주 하나님을 떠난 죄의 대가로 주어진 산물이기에 누구나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고서는 길도 방법도 없다. 또한 고통없는 세상은 결코 기대할 수없다. 다만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극복하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따라서 교회는 고통이라는병명을 가진 만병을 치유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구약과 신약)으로 진단하고 처방하는 종합병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고통스러운 세상의 유일한 기대가 되어야 할 뿐아니라 하나님의 기대이기도 하다. 자신의 글에 마지막으로 남긴 어느 네티즌의 기사가 내 눈과 마음을 휘어 잡는다. “남을 돌보고 자신을 돌볼 줄 몰랐던 이율배반적인 모습” “행복, 그거 참 어렵네!” 마음 속에 꼭꼭 숨겨놓은 이율배반이 고개를 들까 노심초사하며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목회(설교), 그거 참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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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In His Plan, In His Place, In His TIme! Archives
8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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