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은 목사님 같이 보이지 않으세요”
은행 여직원이 생글생글 웃으며 슬며시 내게 건넨 충격적(?)인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고 우아하게 변장된 썩소(썩은 미소)를 띄우며 나지막히 이렇게 물었다. “칭찬이신가요, 욕인가요?” 물론 말의 어감으로 느껴지는 의미는 분명 욕일 확률이 많고 높다. “제가 목사님 앞에서 대 놓고 욕이야 하겠어요. 일반적으로 목사님들에게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꾸밈이 없으시다고 할까요? 사실 처음에는 조금 오해도 했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런 어떤 인간적인 모습이 저 같은 일반인들과의 간격을 줄이는 친근감이 되어 편안하고 좋다는 말입니다.” 다행이 해피앤딩으로 마무리가 되어 변장된 썩소(썩은 미소)를 풀고 안소(안도와 안심의 미소)를 머금고 은행 문을 나섰다. 그 날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그 여직원의 말이 떠나지 않고 멤 돌고 있었다. ‘목사 같은 게 뭘까? 목사다운 목사는 뭘까? 목사는 얼굴에 써 있는 건가?’ 그렇다면 그 평가 기준은 또 무엇일까? 보여지는 외적 부분으로는 품위 면에서의 준수함이나 중후함, 그리고 내적으로는 성품이나 인품 면에서의 고상함과 더불어 영성 면에서의 경건과 거룩함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체 진단을 해 본다. 사실 이 말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이미 오래 전부터 들어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평일에 카페에 찾아온 사람들은 평범한 차림에 차와 커피를 써빙하는 나를 보고 목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러다 교인이 목사님! 하고 부르기라도 하면 깜짝 놀란 손님이 “어머, 목사님이셨어요?” 하며 당황해 한다. 그러면 “강단에서는 목사이지만 카페에서는 웨이터일 뿐입니다”라고 안심을 시켜드린 일 등은 여러 번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적지 않은 교인들 조차 나를 본 첫 인상이 목사님이 아닌 집사님이신 줄 알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미용실이나 자동차 딜러와 같이 굳이 목사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일반 자리에서는 흔히 “사장님, 선생님” 이라는 호칭을 듣게도 되는데 사실 나로서는 어색한 호칭임이 틀림없다. 그러다가“혹시 목사님 아니세요” 하고 알아 봐 주면 또 괜히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니 도대체 뭐가 좋다는 것인지 내 스스로도 아리송하기만 하다. 과거에는 정말 어려서도 그렇지만 이제는 머리가 실버타운을 이루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주위에서는 “목사님은 (최강)동안이시라 더 어려 보여요”라는 말도 물론 자주 듣는 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목사님들의 모임 중에 사회를 보시던 목사님께서 나를 소개하시며 “젊은 목사”란 표현을 쓰시길래 “젊은 목사가 머리를 허옇게 염색하고 나와 어르신 목사님들 앞에 송구하고 민망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려 정말 목사님 같아 보이시는 목사님들께서 인자하신 얼굴에 절제된 웃음을 담아 화답하신 일도 있었다. 바라기는 비록 어려 보이고 철 없는(?)는 모습으로 외적으로는 목사처럼 보여지는 게 없을 찌라도 “누구든지 나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본을 보이는 성령의 사람이 되고,(딤전4:12) 경건의 모양이 아닌 경건의 능력으로(딤후3:5) 목사다움을 인정 받는 목사” 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 본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가장 강력하게 독설(?)로 경고하신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종교적인 전통과 의식으로 철저히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를 반복하시며 “회 칠한 무덤” 심지어 “개 새끼” 도 아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23: 33)고 한탄과 분통으로 의분을 표출하셨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여기서 참고로 “개 XX”와 “독사의 XX”는 어떤 차이가 있일까? [전자는 단순히 욕일 뿐이다. 예수님의 무시로 인한 상처와 개취급(예수님의 의도는 아님)을 당하는 수치와 치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가나안(수로보니게)여인처럼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는 반면에 후자는 "독사" 즉 "사단"을 의미하기에 구원 받을 수 없는 저주의 상태를 말한다.] 장소와 상황 그리고 대상에 따라 “목사 같은 목사”도 되어야 하고 “목사 같지 않은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주제의 결론이라면 결론이다. 혹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얄팍한 임기응변 식 처신이나 처세술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 아님을 전제로 한다. 결론을 내고 추신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했는데도 미적 미적하며 자판기(키보드)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이 생각때문일 것이다. 오래 전에 운전 중 교통위반으로 면허증을 제시하라는 경찰에게 나는 슬쩍 목사 명함을 보여 줘 위기를 넘긴 일이 있었는데 그 때 경찰의 고마움보다 목사 같지 않은 목사로서의 부끄러움이 더 컸던 기억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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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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