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로 등록한 교인의 사업장을 심방하게 되었다.
오랜만의 심방이라 마음이 설레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무겁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주일 예배 후 새 교우로부터 심방부탁을 받고 어떤 사업장이냐고 여쭈었더니 “Liquor Store (주류 상점)입니다” 라는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물어 본 나는 당황했으나 대답하신 분은 자연스러웠다. 그러니 이제 난생 처음 가는 주류 사업장에 가서 어떻게 그리고 무슨 말씀을 드려야 좋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적지 않은 시간을 자동차로 달려 도착한 목적지는 주변에 요트가 정박해 있는 아름다운 해안가에 자리잡은 동네였다. 가게앞에 차를 대고 내리려는 일행을 새 교우께서는 온 종일 길에서 기다리기라도 하신 듯 맞이해 주셔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사업장으로 함께 들어섰다. 선입관 때문인지 처음 느끼는 주류 냄새에 내 코는 자극을 받아 살짝 긴장이 되었으나 깨끗하게 잘 정리된 가게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사업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네, 33년 정도 되었습니다.”라는 말에 나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저희 교회를 출석하시게 된 동기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더욱 나를 놀라게 했다. “ 남편이 돌아가신 후 허전한 마음에 평생에 다니지도 알지도 못하던 교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몇몇 교회를 찾아가 보았으나 마음에 와 닿지 않아 성경책을 구입해 집과 사업장에서 그냥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답답해 하던 중에 아들이 사는 맨하튼을 지나가다 저희 교회를 발견하고 우연히 찾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심방까지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마음에 깊은 감동을 안고 예배를 시작하려고 하니 예배방해와 영업손실을 무릎 쓰고서라도 문까지 걸어 잠그셨다. 설교에 고민하던 나는 삭개오의 예수님 만나기 이전과 이후의 변화된 삶, 그리고 옷을 비유로 몸과 신분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듯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 말씀을 나누었다. 예배를 마친 후 가까운 이탈리안 식당으로 안내 하셔서 정성스러운 대접을 베풀어 주셨다.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을 내다보며 지나 온 목회선상에서의 기억나는 심방에 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1988년 결혼하던 해 어머님의 유언에 의해 어린 나이에 겁 없이 교회를 개척했을 때였다. 젊은 열정과 자신감 충만으로 못할게 없었던 목회가 시간이 가도 교인이 없어 늘 아내만 바라보고 있자니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었다. 하루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 아니 부탁을 드리고 사정을 하였다. “하나님, 저 교인이 없으니 너무 심심하네요. 교인을 떠나 심방이란 걸 할 수 있게 일거리 좀 주세요” 거의 하소연에 가까웠다. 응답이 왔다. 어느 날 전혀 알지 못하는 타 교회 집사님이 저를 찾아와 “혹시 전도사님 심방을 해 주실 수 있느냐?”고 물으시기에 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가야죠” 하고 함께 찾아간 곳이 역사적인 첫 번째 심방이었다. 허름한 무허가 건물들이 있는 비좁은 길을 따라 어느 어두 컴컴한 집으로 집사님은 나를 안내했다. 대낮인데도 집안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고 집사님은 집안으로 먼저 들어가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심방을 설득하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는 것 같이 보였다. 이윽고 집사님의 안내로 들어가긴 했으나 주인의 냉담한 반응에 생 초보 목회자인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냉랭함과 어색함을 무릎 쓰고 예배를 힘차게 인도하였고 이렇게 반복하기를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한결같이 사나운 표정과 무 반응으로 일관하던 아주머니가 부엌구석에서 무엇인가 돌돌 말은 포대기를 들고 오셨다. 그리고는 그 포대기를 푸는 순간 나는 자지러지고 말았다. 그 안에는 어떤 물건이 아닌 어린 신생아가 있었던 것이다. “전도사님, 이 아가는 이제 백일이 지났는데 나면서부터 황달이 심해 병원에서도 소망이 없다고 해 포기한 아이입니다. 이렇게 방치한 지가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무당을 하던 사람입니다. 부끄럽고 죄송하지만 (심방)예배를 계속 부탁해도 될까요?” 하시며 다시 다락방으로 보이는 조그만 공간에 올라가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한 보따리 담아 내려왔다. “이것들은 제가 무당 하면서 사용하던 장신구들이에요. 전도사님께서 처리해 주세요.” 아직 목사 안수도 받지 못한 목회 초년생인 나의 첫 번째 심방치고는 너무 세고 강했다. 나는 그 날 가져온 보따리를 열어 보지도 않고 사택 연탄 보일러실에 쳐 박아 넣어 모두 소각을 하는데 화력이 너무 강해 그만 연통이 녹아버리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집을 심방하던 어느 날 문 앞에서부터 기다리고 있던 (전직 무당) 아주머니께서 반갑게 맞아 주시며 집안으로 안내하셨다. 그리고 환한 얼굴로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전도사님, 아기가 낳았어요. 살았어요.” 하며 회복된 아가를 보여주며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후 개척멤버가 되어 교회에 출석하며 일꾼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곳 맨하튼에서 개척했을 때도 이웃에 사는 일명 “강아지 아저씨”라는 분의 심방도 만만치 않은 사연이 있다. 애지중지하던 애완견이 노환으로 시름시름 앓아 생사 기로에 있을 때 심지어 산삼을 먹여 가까스로 생명을 연명시키고 있었으나 그만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던 것이다. 평생 홀로 살며 키우던 애완견인지라 가족이상의 정을 쏟았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의 심방부탁을 받고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자신도 애완견 따라 같이 죽겠다고 식음을 전폐하고 있어 거의 폐인과 같은 모습으로 어두 컴컴한 사무실에 우두커니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여러 말로 위로하고 권면하니 조금 정신이 들었는지 이렇게 입 을 열었다. “목사님, 우리 불쌍한 개를 허드슨 강에서 보내려고 하니 오셔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네!” 나는 깜짝 놀라 당황과 황당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대답을 못하고 생각해 보겠다는 말만 남기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꿨다. 맨하튼의 카사노바와 같은 삼인 방(한국 모 재벌 아들포함)이 자리를 함께 한다고 주위에서 귀띔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장례예배 조차도 죽은 자를 위한 예배가 아니라 산 자를 위한 예배가 아닌가! 이 후에 강아지 아저씨께서는 1차 성전확장 때 한인타운이 떠들석하게 특유의 선동(?)과 충동(?)을 무기로 온 몸을 안 사리고 공사를 도와 주셨고 나에게는 또 하나의 잊을 수없는 심방이 되었다. 이처럼 기억에 잠겨있는 동안 어느새 자동차는 집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모처럼의 심방이었던 터라 가면서 흥분하고 오면서 정말 즐거웠다. “하나님, 저 요즘 심심해 지려고 해요. 어디 심방할 데 없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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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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