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병원에 다녀왔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의사 선생님이 다녀가라고 연락이 왔으나 가 봐야 또 똑 같은 말씀을 하실 거란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던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반복되는 의사 선생님 말씀 “약은 잘 드시고 계십니까? 매일 적당량의 운동은 하십니까? 음식은 어떻게 조절하고 계십니까? 등” 그 동안도 귀에 못이 배기도록 들어오던 의사 선생님의 잔소리(처방)이시다. 나는 마치 부모님에게 잘 못이 있어 꾸중을 듣는 어린아이처럼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도 제대로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답답한 의사 선생님은 자신의 책상 서랍을 활짝 열어 그 안에 가득한 약들을 보여 주며 “의사인 나도 이렇게 약을 먹습니다” 그리고는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보십시오” 하며 약을 집어 입안에 툭툭 털어 넣는다. “의사인 나도 이렇게 약을 먹는데 환자분이 왜 약을 먹지 않고 의사의 처방대로 하지 않습니까? 목사님이시라도 병원에서는 환자로서 의사가 지시한 처방에 잘 따르셔야만 합니다. 의사에게 있어 좋은 환자는 처방대로 잘 따르는 환자입니다.” 나는 뻘쭘하게 되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지시하신 처방대로 잘 따라 좋은 환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고 깍듯이 대답을 했다. 나는 병원문을 나서 돌아 오는 길에 조금 전 의사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니 뜻 모를 작은 웃음이 입가에 흘러 나왔다. 결과적으로 나는 나쁜 환자였다.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때 목회자로서도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목사에게 있어 어떤 교인이 좋은 교인이겠는가? 당연히 목사가 전하고 가르치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교인임이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설교 말씀 따로 적용 생활 따로, 교회 생활 따로 사회(가정) 생활 따로 한다면 주님이 책망하셨던 “회 칠한 무덤”과 같이 단지 타성에 젖은 종교생활에 익숙하여 무늬만 교인이란 사실에 대해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상담을 하던 모 교인이 이런 저런 고민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길래 “기도 하세요” 라고 말씀을 드리자 “아, 그러실 줄 알았어요. 목사님은 항상 기도하라고 만 하세요” 하는 것이었다. 목사가 할 수 있는 믿음의 처방이란 말씀과 기도 외에는 없다지만 또한 그 이상 가장 효과적인 방법도 없다고 믿는다. 세상적인 학문과 기술 그리고 경험은 오히려 교인들에게 목사가 배워야 할 지도 모른다. 세상 살아가는 재주는 목사보다 단연코 능수능란하지 않은가? 그러나 교회에서 목사를 통해 처방되는 말씀, 조금 지난 고전이기는 하나 구약과 신약 그리고 기도의 약이야 말로 만사해결에 최선의 처방제인 것이다. 따라서 좋은 교인은 목사의 처방대로 따르고 순종하는 교인임이 틀림없다. 교회와 말씀 그리고 기도생활에서 떠난 교인들의 증상은 심각한 수준의 불행을 가져다 주었음을 지나온 목회 경험을 통해 이미 수 없이 보아 왔다. 비단 어디 의사와 환자, 목사와 교인의 관계에서뿐 이겠는가? 확대 적용할 수 있는 관계의 범위는 수 없이 많다. 하나님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 우리라”(마3: 10) 는 말씀처럼 좋은 열매를 맺어도 되고 안되고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요구 하시는 열매는 반드시 좋은 열매여야만 한다. 앞서 나눈 의사와의 대화에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나는 이렇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선생님, 사실 약을 먹으면 변비 증상이 생겨 먹지 않았습니다" 이에 의사 선생님은 말이 미쳐 끝나기도 전에 무슨 쓸데없는 변명이냐고 나무라시듯 단호하게 " 변비 약 처방해 드릴테니 드세요" 나는 급 후회하는 마음에 손사래를 치며 "아니요, 약은 더 이상 필요없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서둘러 인사하며 병원을 나섰다. [출처] 좋은 환자 |작성자 NY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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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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