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탈을 쓴 양”이라는 제목의 조금 지난 기사내용이다. “일본인들은 개와 양도 구별하지 못하는 까막눈이라고 한다면 분명 지나친 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일본인 수천 명이 호주와 영국산 양을 푸들로 알고 구입하는 웃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다. 호주 언론에 따르면, 일본 삿포로지역에 있는 한 회사는 최근 호주와 영국에서 수입한 양을 푸들이라고 속여 일본인들에게 마리 당 1천600달러 씩에 팔았다. 진짜 푸들이 일본에서 이 보다 두 배 정도의 가격에 팔리는 현실을 감안할 때 푸들의 탈을 쓴 양은 그야말로 '개 값'인 셈이다. 그래서 삽시간에 2천여 마리가 팔려나갔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사기꾼에게 속아서 양을 구입한 유명 영화배우가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해 새로 구입한 자신의 푸들이 왜 짖지도 않고 개밥을 거들떠보지도 않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면서 문제가 수면 위로 불거져 나온 것이다. 결국 전문가의 손으로 넘어갔고 푸들의 정체는 곧 양으로 판명됐다. 이 사건 이후 수백 명의 일본 여성들이 새로 산 자신들의 푸들도 모두 양인 것 같다는 신고를 경찰에 해왔다. 한 부부는 푸들의 발톱을 예쁘게 다듬어주기 위해 애완동물 미용실에 데리고 갔다 고창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본 경찰은 푸들 사기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2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면서 사기꾼들은 일본에서 양을 잘 볼 수 없어 많은 사람들이 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악용한 것 같다고 밝혔다.” 양 구경하기 힘들기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다를 바 없지만, 그렇다고 과연 그런 어리석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혹 관심을 끌기 위한 의도로 기획된 연출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드는 상황이다. 기왕 개와 양에 관한 말이 나왔으니 이솝 이야기 중에 “개와 양” 을 소개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옛날 옛날 양들과 그 양을 지키는 개들이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양들은 개에 비해 자신들의 대우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참아 왔는데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그래, 우리가 인간에게 주는 것을 보 자고요. 양털, 양젖, 고기, 그뿐인가? 새끼도 낳아 주지요. 그런데 우리한테는 풀 밖에 주는 게 없지 않아요. 개는 아무 것도 주는 게 없는데 사람이 먹는 것을 먹으며 편히 살지요.” 우연히 지나 가던 개가 이 말을 듣고 들어와 말했다. “듣고 보니 그럴 듯 하군. 그런데 말이야, 내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도둑이 훔쳐가거나 늑대들이 너희를 다 잡아 먹고 말 거야.” 개는 양들을 한번 둘러 본 다음 말을 계속 했다. “너희는 밤에 편히 자지? 우리는 밤에 뭘 하고 있을 것 같아? 밤새 너희들을 지키느라 눈 한번 붙여 보지 못해. 가끔 늑대와 싸우다 죽어가기도 하지. 아직도 할 말 더 있나?” 개의 말을 들은 양은 부끄러워하며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사람은 자기가 제일 고생을 많이 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교회나 가정 불화의 원인도 자기가 불공평 하게 일을 많이 하고 희생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원인일 때가 종종 있다. 남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속편으로 나온 이야기이다. 개가 돌아간 후 우두머리 양이 말했다. “우리가 큰 실수를 했어. 개가 한일이 사실 굉장히 중요 하더라고. 개가 없었다면 우리는 늑대에게 다 잡혀 먹었을 거야. 밤에 우리가 편히 잘 때 개는 우리를 지키느라 잠을 한숨도 못잔다는거 사실 같아.” 양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 그래 듣고 보니 그 말이 맞구먼?” “사실 이제 보니 개가 우리 생명의 은인이구먼.” “ 앞으로는 우리 모두 개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합시다.” “그럽시다.” 그 후로 양들은 개만 보면 모두 최대의 경의를 표했다. “아니, 왜들 이래요? 어색하게.” 개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개들은 점점 익숙해졌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 개들은 양들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심지어 양들이 버릇 없다고 물어 뜯기도 하고 건방지다고 죽이기 까지 했다. 목동이 이것을 보게 되었다. “아니 양을 지키랬더니 이놈의 개들이 양을 물어 죽이다니.” 목동은 개들을 모조리 쫓아내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자리와 위치에 따라 역할과 의무가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분수와 주제를 파악하고 지키라는 교훈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성탄절 날 밤에 일어난 일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눅 2:8~11)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가상하기는 개도 있었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목장에는 개의 탈을 쓴 양, 양의 탈을 쓴 개를 경계해야 한다. 또한 목자가 개와 양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착각을 한다면 목자 자신은 물론 목장에 큰 위협이 된다. 따라서 “네 양을 먹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양떼를 지키는 성탄시즌을 보내야겠다. 기도하며 묵상하는 중에 "목자는 목자이며 양은 양이다" 라는 음성이 들려온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출처] 개와 양|작성자 NY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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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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