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관대해도 “위선” 용서 못해 월 스트리트 저널(WSJ)의 기사제목이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사우스 케롤라이나의 마크 샌포드 주지사의 애정행각을 계기로 정치인들의 스캔들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진짜 용서 받지 못하는 문제는 “외도”자체보다 “위선”이라고 월 스트리트 저널(WSJ)이 보도했다. 샌포드는 과거 르윈스키와의 염문으로 미 정계는 물론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해 당시 도덕적 정통성을 가진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탄핵을 주도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애인에게 보낸 이 메일에서 평생에 걸쳐 명예를 지키며 살아왔다면서 성경구절까지 인용했다고 한다. 계속해서 월 스트리트 저널은 얼마 전 엘리엇 스피쳐 전 뉴욕주지사 경우에서도 법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할 주 검찰총장 출신의 주지사가 성 매매를 해 관련법을 교묘히 이용했다는 위선적 요소가 결국 유권자들의 용서를 받지 못한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죄와 벌” 즉 “죄”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벌”의 형태는 달라질 수 있다는 하나의 사례라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죄에 대해 보는 관점이 바로 “위선”이라는 것이다. 당사자의 깊은 성찰과 정직한 태도에 따라 때로는 얼마든지 “관대하게 용서”가 될 수도 있는 반면에 의도적일 뿐 아니라 지능적으로 교묘히 죄를 감추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전혀 죄의식 없이 죄를 포장하고 미화시키는 태도 즉 “위선”은 도리어 감정을 격동케 하여 분노를 자극 할 뿐이다. 그러므로 드러난 죄 자체보다 드러나지 않은 위선이 더 악하다는 결론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러기에 많은 죄인들을 직접 만나셨다. 그러나 소위 스스로 경건하다고 하는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하신다고 시비를 걸고 나무라기까지 한다. 이에 주님은 죄인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병든 자에게라야 의원이 필요하다”는 말로 대신하며 그러므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하셨다. 따라서 당시에 죄인의 대명사처럼 취급 받던 세리나 창기들에게는 관대하셨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눈에 들보(죄)는 모르는 척 감추고 포장하고 위장할 뿐 아니라 도리어 완장 찬 일제의 앞잡이처럼 남의 눈에 작은 티(죄)을 지적하며 독설을 주저하지 않고 외식하는 무리들을 향해 주님은 참을 수 없는 의분을 가지고 이렇게 성토하셨다. “독사의 자식들아! 회 칠한 무덤들아!” 우리가 잘 아는 다윗 스캔들에서도 역력히 하나님의 심판의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선 다윗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간음하지 말라는 7계명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10계, 그리고 도적질하지 말라는 8계,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라는 9계와 더불어 살인하지 말라는 6계마저 범하고 말았다. 도저히 죄의 유형은 물론 죄질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다. 교묘히 계속해서 죄를 감추다가 도리어 눈덩이처럼 불어난 전형적인 죄의 유형이다. 그런 그에게 하루는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의 감추어진 죄를 지적하시고 드러내시며 간섭하시기 시작하셨다. 비로서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한 슬픔과 탄식으로 침상이 젖도록 눈물로 회개하며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부르짖게 된다. 이 지구상에 “죄”에 관한 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경은 이렇게 선포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 그렇다고 영지주의자들의 극단적 사상과 같이 죄를 방조하거나 간과해서 육체의 본능이 하자는 데로 방임하는 것은 타락이다.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무 의식적이든 의식적이고 의도적이든 죄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늘도둑이나 소도둑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다 같은 죄일 뿐이다 다만 죄의 많고 적음이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외식하며 위선을 하느냐” 아니면 “정직하게 인정하고 자복하며 회개하느냐”가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는 관점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옥은 단순히 죄인이 가는 곳이 아니고 외식과 위선으로 회개하지 않은 죄인이 가는 곳이요 천국은 용서 받은 죄인이 가는 곳이라 하겠다. [출처] 죄와 벌|작성자 NY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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