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는 난이도 최상의 난감한 질문이 하나 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이 질문의 의도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는 포기하라는 결정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 이런 질문을 받을 기회는 물론 주위에서 그렇게 물어 볼 형편도 아니었다. 아빠, 엄마라 부르기에는 간지럽고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늙으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은 부모님이셨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받은 기억이 있다. “자장면 먹을래? 짬뽕 먹을래?” 생일이 돌아오면 아버지께서 변함없이 하신 질문이었다. 양자택일이라 쉬울 것 같은데 여간 대답이 어려운 게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면 아마도 선택해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을 결정하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삶의 순간, 순간, 매사가 이러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 또한 생과 사의 선택에서 비록 충동적이라 하나 죽음을 선택한 결과이기도 하다. 자살이란 선택이 다른 여타 선택과 달리 불행한 것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데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건강한 신앙생활의 비결이 무엇인가? 에 대한 거룩한 고민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던져보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역시 바른 선택에 따른 결정에 달려있음에 틀림이 없다. “믿음의 조상” 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엄청난 축복의 상징적 인물로서 아브라함의 경우가 좋은 사례라 하겠다. 나이 100세에 겨우 얻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서는 제물로 요구하신다. 자식을 둔 모든 부모의 마음이 다르지 않겠으나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을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구 아니 명령에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도 궁금하지만 도대체 이러한 요구를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무엇일까? 는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겉으로는 말씀은 안 하셨지만 “하나님이 좋아? 아들 이삭이 좋아?” 라는 하나님의 의중이 실린 명령이었다.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우상도 결코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인생 최대의 시련이요 시험이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아들 이삭이라고 우상이 될 수 없었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아들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제자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서도 주님의 의중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속내를 다 아신다. 그리고는 이렇게 물어보신다. “하나님이 좋아? 세상(돈, 애인,명예,인기,권력.....)이 좋아?” 나의 평생에 소원과도 같은 꿈도 하나님이 반납하라고 하신다면 과연 내려놓을 수 있을까? 쉬운 결정을 위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세상(나)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십자가에 달려 죽이시기까지)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만일 아버님이 생존하셔서 다시 나에게 "자장면 먹을래? 짬뽕 먹을래?" 라고 물으신다면 나는 어렵지 않게 이렇게 대답할텐데...... "짬짜면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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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In His Plan, In His Place, In His TIme! Archives
August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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