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있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의 열기로 지구촌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경기 결과에 따라 각국을 대표하여 출전한 선수들은 물론 전 국민이 한숨과 환호, 울고 웃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또한 한결같이 금메달이 확정된 선수들은 자국의 국기를 몸에 감거나 손에 들고 경기장을 뛰어다니며 휘날리는 장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몇 년 전 관객 천만을 돌파하고 흥행에 성공하며 한국영화사에 새 역사를 기록했다고 찬사를 받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라는 제목을 떠오르게 한다. 특히 ‘태극기를 휘날리며 백두산 정상에 태극기를 꽂는 그날까지 전진하고 또 전진하자’고 장동건이 외치는 장면은 분단된 아픔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관객들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주었다. 지금 올림픽 선수들에게는 그 동안 흘린 땀과 눈물을 거름 삼아 최선을 다하여 베이징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려야한다는 일념이 그들의 일생일대의 목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올림픽 열기를 피부적으로 느끼면서 아울러 과연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휘날리며 살아왔으며 앞으로 또한 무엇을 휘날리며 살아갈 것인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탈선한 아주머니들의 휘날리는 치마바람, 독재자들의 휘날리는 권력바람, 졸부들의 휘날리는 돈 바람, 자신의 이름을 휘날리는 명예바람, 무차별적으로 범람하여 휘날리는 향락바람 등 온통 세상은 타락을 부채질하듯 죄악으로 오염된 가치 없는 추악한 깃발들만 휘날릴 뿐이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딤후4:7,8) 하나님 나라의 천국복음 깃발을 휘날리며 일생을 살았던 사도바울의 신앙고백이다. 하나님 나라의 시상대에서 썩지 않는 영원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을 목표로 살았기에 가능했던 고백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대표로 선발되어 지구촌에 보냄을 받아 천국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라고 적용해 볼 때 분명 새로운 도전이 되어 가슴이 벅차 오름을 느끼게 된다. 매 경기마다 임하는 선수들의 표정에서 긴장감을 넘어 비장함마저 느낄 수 있듯이 우리 역시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풀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비장한 모습을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관객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천국 올림픽에도 경기종목이 많다는데 알고 계십니까? 기도의 금메달, 찬양의 금메달, 전도의 금메달, 감사의 금메달, 사랑의 금메달, 충성의 금메달, 순종의 금메달 등 한번 노려 볼만한 금메달 종목은 무엇입니까? 단 천국 올림픽이 다른 것은 모든 경기가 단거리이거나 순식간에 결정나는 기록경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올림픽의 하이라이트이자 꽃이라고 하는 마라톤 경기와 같다고나 할까? 우리 인생을 올인 즉 전부를 걸어야 하는 경기지만 감사한 것은 자격조건에 있어 나이와 체력과 같은 제한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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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In His Plan, In His Place, In His TIme! Archives
8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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