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이성근화백을 모시고 첫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교회에서 개최하는 만큼 주위의 관심과 반응도 뜨거웠다. 또한 개인적으로 화백을 만나 느낀 첫 인상은 목사인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비쳐졌다. 그러기에 한편으로는 다름에서 오는 부조화라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으로 인해 함께 전시회를 잘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슬그머니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염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함께 할수록 서로가 느끼고 반응하는 매사가 다름에서 오는 차이점이 갈등을 유발하기 보다 도리어 다름에서 공감되는 공통점이 발견될 때 이것이 진정한 조화가 아닌가 하는생각으로 큰 기쁨이 되었다. 모 일간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기자는 “일반 전시장이 아닌 교회에서 전시회를 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라는 질문에 이 화백께서는 “ 저도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그러나 그림은 꼭 전시장에 걸려야 만 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스로 되 묻게 될 때 문제는 해결 되었습니다. 즉 관념이 나를 묶으면 그림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먼저 변해야 세상도 변한다는 것이 내 철학입니다.” 이에 저도 한 마디 거들었다. “ 그런 면에서 이 화백과 저의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가 예배만 드리는 곳이라는 종교적, 전통적 관념의 틀을 깨지 않고서는 많은 사람 즉 교회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일반인들을 교회로 끌어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지요. 그래서 저는 교인들을 위한 교회보다는 불신자들을 위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는 화백께서 퍼포먼스 하는 중에 “여러분 저의 그림은 여백을 두고 있습니다. 여백은 곧 비움입니다. 모든 것을 채워 만족시키겠다는 욕심이란 마음을 비웠을 때에 나의 상상이나 생각들이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며 그림 또한 숨을 쉴 공간이 필요합니다.” 하시며 여백의 미학을 소개하였다. 이것을 목사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로 시작해서 마음의 빈 자리에 내가 아닌 주님이 좌정하셔서 자유롭게 우리를 이끄시도록 해야 합니다 시몬 베드로의 빈 배에 찾아오신 주님의 말씀이 빈 배를 가득 채우셨습니다. 즉 비움은 모자람이 아니라 여유로움이며 풍요로움의 원인제공이 됩니다. ”라고 하면 설교가 된다. 또한 화백께서는 계속해서 “보이는 가치와 보이지 않는 가치가 있다며” 자신의 작품 중에 갈보리 언덕을 표현한 그림 앞에서 말을 이어 가셨다. “갈보리 언덕이나 십자가를 볼 때 흔히 고난이나 고통을 연상하지만 자신은 오히려 환희를 느낍니다. 그것은 보이는 가치와 보이지 않는 가치에서 오는 차이점입니다. 보이는 것은 고난이지만 저는 보이는 고난 이후의 다가올 보이지 않는 환희를 미리 내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는가?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 라는 성경구절만 인용하면 분명 설교였다. 나는 새삼 재 발견을 하게 되었다. 아니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온 우주 삼라만상을 통해 당신의 뜻과 의지를 나타내시고 표현하신다는 사실을 이미 아는 바이지만 한 사람의 그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성경을 적용하고 말씀증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즉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적용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강단에서 특정인 목사의 의해서 표현되는 것만이 설교가 아니라 누구나 어떤 자리에서든 하나님의 의지와 뜻을 표현하고 나타낼 수 있다면 곧 설교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떤 사역 자는 영화를 통해 설교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기에 어떤 영역에서든 하나님의 뜻을 표현 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설교의 소재요, 설교자가 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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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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