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택 현관계단이 언제부터인가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한쪽 블럭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처럼 흔들려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인부를 불러 공사를 하려니 대공사가 될 것같아 예산 상 엄두를 못 내었으나 아무래도 사고의 위험이 늘 부담으로 작용하여 할수없이 스스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만물박사인 인터넷 검색창에 여느때와 같이 궁금증을 쳐 넣었다. "시멘트와 모래 그리고 물의 배합비율" 등 공사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지식을 갖추니 자신감을 얻게되어 다음 날 작은 아들과 함께 홈디포에 가서 작업에 필요한 도구들을 하나 하나 차질없이 준비하여 자동차에 가득 싨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시멘트와 모래가 배합이 되어 나온 좋은 제품이라고 추천하는 직원의 말만 믿고 사 가지고 온 시멘트 포대를 먼저 아들과 함께 힘차게 개봉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크고 작은 자갈들이 시멘트 가루와 함께 우루루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급 당황한 나는 아들과 함께 어쩔 줄 모르고 망연자실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작은 아들과 세 가지를 놓고 합의를 위해 의논을 하였다. 첫째, 다시 돌아가 반품하자. 둘째, 교환하자. 그러나 그러기에는 둘 다 이미 공사가 시작도 되기 전에 어느 정도 지쳐 있음을 서로 아는지라 마지막 세 번째에 어렵지 않게 합의를 이루었다. 그냥 밀어붙여 공사를 시작하자. 심기는 제대로 불편하지만 그냥 큰 돌들만 제거한 상태에서 한번 시도해 보기로 하고 물을 배합해 공사를 진행하였다. 나는 작업하면서 불평을 늘어 놓았다. "아니 이게 뭐야, 왜 이런 걸 추천해 준거야" 그러자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일을 도와 주던 작은 아들이 "아빠, 그만해요. 아빠랑 나랑 Experience(경험)가 없어서 그렇잖아요." 나는 은근히 약이 올라 투덜대다가 그만 아들에게 역시 지대로 한 방을 맞은 꼴이 되었다. 생각의 깊이가 나보다 아들이 훨씬 낳았기 때문이다. 결과에 집착해 혼란을 겪다보면 원인을 잃어 버리게 된다. 그러나 문제가 된 원인을 바로 알면 결과에 대해 승복하게 된다는 당연한 원리와 상식을 아들은 알고 있었고 나는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더 이상 할말을 잃은 나로서는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감독과 조수가 바뀐채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이제 남은 문제는 과연 어느 정도 견고하게 버텨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자칫 사람이 출입하다 삐그덕 거려 사고가 나지 않을까하는 걱정 반과 그래서 그 동안 애쓴 공도 없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반이 되었다. 우선 안전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공사이니 만큼 미적시각까지는 처음부터 기대를 하지 않았으므로 그런대로 걱정은 던 셈이다. 일단 모든 공사도구와 주변을 정리하고 시멘트가 마르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서 너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현관계단에 나가 조심스럽게 아니 두렵고 떨리는 긴장된 마음으로 보수한 계단 여기 저기를 만지고 살펴 보았다. 너무 고맙게도 그런데로 튼튼하게 고정이 되어 당분간 안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공사를 떠나 작은 아들에게 새삼 "Experience"(경험) 라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 나 자신이 설교할 때 자주 강조하는 신앙생활의 포커스(주제,초점) 역시 "Experience"(경험) 이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이론과 말로서 설명하거나 이해하고 이해 시킬 수 없는 신비로운 영역이라는 말이다. 기도의 능력과 찬양의 감격 그리고 말씀의 살아있는 영감을 통해 경험되어지는 심오한 믿음의 세계이므로 성도들에게는 꼭 필요한 주제의 설교가 된다. 이러한 신령한 경험 또는 체험과 상관 없이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때만 되면 적지 않은 딜레마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와 자칫 삶의 한 수단과 방편으로서의 기능과 역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소위 종교생활에 머물고 마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온통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제를 통해 어떻게 엄청난 구원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축복을 경험하게 되었는가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증거하고 있다. 경험이 되어지면 실수를 반복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는 일에도 두려움이나 걱정할 필요없이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조금만 나와 주위를 살피면 반드시 쓰라린 댓가를 지불하고야 경험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어렵게 얻는 것을 볼 수있다. 다만 기억할 것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이미 수 없이 경험한 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만 있으면 망각하고 불평 불만을 일삼는 어리석음과 무지함은 결코 버릇처럼 되어서는 안될 뿐 아니라 경계하고 또 주의하도록 어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에 진행 중인 경험을 살리고 내일의 약속에 대한 경험을 확신하는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출처] Experience (경험)|작성자 NY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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