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사는 인생, 닥치는 대로 사는 인생, 그럭저럭 사는 인생, 적당히 사는 인생,
대충 사는 인생, 빌어 먹을 인생, 흥청망청 사는 인생, 무미 건조한 인생 등에서 발견 할 수 있는 공통점이 무엇일까? 삶의 목적이 없다는데 있으며 그 말은 곧 삶의 우선순위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목적(목표)이 있어야 그 목적에 따른 우선순위가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선순위 여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관과 지향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지금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은 물질만능주의 , 외모, 쾌락지상주의, 학벌제일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심각성은 홍수심판을 자초했던 노아시대와 불 심판을 초래했던 소돔과 고모라 시대를 능가하리 만치 악한데 있다. 세상의 물질과 쾌락에 눈이 어두워 천국은 볼수가 없고 너무도 현실주의적이며 향락주의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에덴을 떠난 후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가야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저주받은 땅을 에덴으로 만들어 보려고 바벨탑을 쌓는 어리석은 시도를 할 뿐이다. 즉 하나님 없는 에덴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낙원이 아니라 인간의 쾌락으로 낙원을 이루어 보려고 한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두가지 세력의 대결장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의 대결인 것이다.(갈5:17)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에 순종해야 한다.(행5:32) 성령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된다. (엡4:30) 성령을 거스린다거나 성령을 소멸해서도 안된다.(행7:51)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우선순위를 정해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우리의 인간적인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며 사랑하고 섬기면서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살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열정과 소망이 세상 속에 그 어떤 일보다 먼저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주님을 중심하여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뜻을 쫒아 살아가는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여야만 한다. 그리하면 주님의 위로와 은혜가 풍성하게 넘치고 영적인 자리와 시각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 질 것이다. 한달에 한번 사회자와 함께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프로에서 잊을 수 없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믿음,소망,사랑이 할머니예요”하시며 자신을 소개하시고 불우한 주위의 이웃 뿐 아니라 전 세계 그리고 열방을 가슴에 품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하시는 선교사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목사님, 오늘은 먼저 3가지 감사를 간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어요. 그리고 기도제목으로는 그 동안 자신을 희생하시며 방송에 나오셔서 사역하시는 목사님들과 교회를 위해서 기도 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애청자들이 온 종일 기독교 방송에 귀를 기울여 위로와 힘을 얻고 살아가기에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하시며 계속해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항상 개인적으로 목사님들과 교회를 위해 기도하지만 특별히 주효식목사님과 뉴욕정원교회를 위해서 0순위로 기도한답니다.” “0순위”라는 말씀에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워 생방송 진행 중에 가슴이 멎어 숨이 막힐 뻔 했다. 나는 머리로는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답례를 하려 했으나 엉뚱하게도 “아이고, 주여!”가 입 밖으로 튀어 나오고 말았다. 가까스로 마음과 감정을 진정시키며 뒤 늦게 “감사합니다. 바로 선교사님과 같은 분들의 배후의 기도가 있기에 저와 섬기는 교회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었으며 또한 앞으로도 가장 큰 원동력이요 힘이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목사가 “아이고”는 무슨 “아이고” 평소에도 잘 쓰지않는 “아이고”가 왜 툭 튀어 나왔는지 지금도 모르겠고 잠시나마 급 당황했었다. 그러나 “아이고, 주여”는 알고보니 내가 주님께 간다는 심오한 뜻이 담긴 “I go 주여” 가 아닌가!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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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In His Plan, In His Place, In His TIme! Archives
8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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