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아도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행복의 조건에 관심이 증폭되기 마련이다. 특별한 비법 또는 비결을 자랑하듯 이 사람 저 사람 처방전을 쏟아 놓지만 제공한 당사자는 물론 누구도 그리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지 않다. 대상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부모의 입장에서 행복의 조건은 아마도 자식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농사 중에 가장 큰 농사가 사람농사 그 중에서도 자식농사라 하지 않았던가 싶다. 속된말로 “내가 미쳤지. 너같은 놈을 낳고 미역국을 먹었다니” 한다면 큰 불행이요. “내가 너로 인해 자긍심을 갖게되는구나, 자랑스런 나의 아들아”할 수 있다면 분명 행복이리라. 오늘 나는 이런 자랑스러운 일을 통해 기분이 흐믓한 나머지 입가에 미소가 떠날 줄 몰랐던 행복한 하루였다. 행복을 가져다 준 주인공과 사연은 이러했다. 교인 중에 N.Y.U대학원에서 뮤지컬 작곡을 전공한 학생의 졸업 작품 발표회 날이었다. 교회에서 반주자로 헌신하는 자매였기에 무식한 나는 단순히 본인이 작곡한 몇 곡을 자신이나 주위의 도움을 받아 연주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다른 교우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면서 나의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여지없이 빗 나갔다. 반전도 이런 반전은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뺨 칠 정도의 감격적인 무대였다. 실제로 브로드웨이의 실력있고 잘 생긴 뮤지컬 배우들이 등장해서 그것도 내가 섬기는 교회 반주자가 작곡한 곡들을 가지고 저들이 입을 맞춰 노래를 멋지게 소화하니 어찌 감격하지 않겠는가? 1시간 30분 가량의 장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감과 자긍심의 교차속에 한 순간도 눈과 귀를 뗄 수 없는 말 그대로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목사의 눈에는 아직 미숙해 보이기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볼 정도로 쑥 커버린 것같은 현장이었기에 정말 신선하고 즐거운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참조: 실제로도 내가 올려다 봐야 하는 키인 것도 사실이다) 공연을 마칠 무렵 배우들과 관객들은 조만간 뮤지칼계에 대성할 작곡가임을 알아보듯 그녀를 향해 일제히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행사는 막을 내렸다. 공연을 마친 후에도 나를 비롯한 다른 교우들의 흥분은 쉽사리 가라않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마침 출연진 중에도 주연 배우들이 작곡가에게 찾아와 또 한번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려는 순간 나는 기회를 놓칠새라 그들에게 접근해 자랑스럽게 말했다. “You Know, She is my Church Member, and I’m a Pastor” (그녀는 우리교인이고 나는 그 교회 목사다) “Could I take a picture with you?”(사진 한장 같이 찍어도 될까요?) 기념촬영도 예정대로 잘 마치고 행사 마무리에 분주한 그녀를 뒤로하며 우리일행 역시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만감이 교차하였다. 학교입학과 또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의 고비도 여러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던 모습들 그리고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모습들이 떠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슬쩍 눈물을 도둑질하듯 훔치고 말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마음에 소리쳤다. “I’m proud of you” (나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모두 자랑스러운 교인이 되도록 신령한 농사를 잘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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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In His Plan, In His Place, In His TIme! Archives
8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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