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계”라는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비교한다는 자체부터 한계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요즘 나오는 상품광고에는 “unlimited” 라는 문구를 쉽게 자주 보게 되는데 기능과 성능을 과시하려는 사실 과장, 과잉광고라 하겠다. 그 누가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라고 자신하고 장담을 할 수 있겠는가? “내 사전에는 불 가능은 없다”라고 호언장담했던 나폴레옹을 비롯 이미 지나온 역사를 통해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의해 입증되고 교훈이 되어왔다. 그래서 인간의 최고학문이라고 하는 철학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보려고 애써보지만 결국 도달할 수 없고 해결의 실마리 조차 풀리지 않는 학문의 한계성을 넘지 못하고 내린 결론이 “인생무상” 과 “삶의 회의”가 아니던가! 한계를 느낄때의 위험성은 무능력과 무기력으로 인해 자괴감에 빠지게 되고 소망마저 사라진다는데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는 “여기까지구나”라는 스스로 절망의 선을 긋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상과 상대를 떠나 누구에게나 동일한 인생의 문제점을 잘 지적해 준 작은 사례가 바로 모 방송국의 “힐링캠프”라는 프로에 출연자로 나온 가수이자 제작자이며 아이돌 문화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박진영이 인생의 고민이자 앞으로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하며 제시한 “세상과 인간은 누가 그리고 왜 만들었는가?”라는 주제였다. 이미 일찍 어린 나이에 “돈과 명예 그리고 자선”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도 해결 할 수 없는 인생의 한계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 실체와 주체를 알 순 없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진리(창조주)에 대한 목마른 갈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전자와 다른 한편 인생에게는 막다른 골목과 같은 한계의 상황이 도리어 창조주를 향해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좋은 수단과 방편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죄악 가운데서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교만하고 자만하며 거만한 인생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목사로서 지나온 목회를 돌아보더라도 극한 한계선상에 오고 가기를 끝없이(?) 반복했던 것 같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인 한계상황에 봉착해 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정답이다. 때로는 주변에서 나의 목회사역에 관해 물어 올 때면 이렇게 입버릇이 되어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항상 절벽 낭떠러지 끝에 홀로 서 있습니다”라고…… 모든 삶의 방식이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사람이든 사물이든 관계 속에서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 큰 영향을 받게 되는데 하나님 또한 그러한 관계를 배제하지 않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가신다. 성경은 그런 원리로 볼 때 어떻게 한계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는가를 가르쳐 주는 교과서요 그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인도하는 나침반인 셈이다. 따라서 이 진리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조심스럽게 잘 살피고 정도를 따라 행동하면 가장 적합하고 적당한 해답을 얻게 된다. 이제 계속되는 인생의 한계상황을 염려하고 두려워하여 도피하고 포기하기 보다는 도리어 한계상황을 디딤돌 삼아 정면도전 한다면 뒤에서 추격해 오는 애굽군대와 앞에 가로막힌 홍해라는 진퇴양란의 절대,극한 한계상황에서 홍해를 고속도로로 바꾸신 반전과 역전의 명수요 전문가이실 뿐 아니라 그야말로 한계가 없으신(unlimited) 창조주 하나님의 예비하신 새롭고 신비한 한계없는 돌파구가 마련되어 더 높이 더 멀리 전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었던 과거는 물론 현재도 되가고 있고 미래도 반드시 될 것이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주변인물들이 다 그를 떠나 그에게 더 이상 소망이 없는 한계상황으로 보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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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In His Plan, In His Place, In His TIme! Archives
August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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